국내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바탕으로 국산 제품 강세…과도한 경쟁 막을 자정 노력 필요

[컴퓨터월드] 국내에서 RPA 시장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금융권을 중심으로 도입에 가속화되기 시작했으며, 올해에는 그동안 도입을 망설이던 공공기관에서도 적지 않은 도입 사례가 나오고 있다. 특히 대부분 글로벌 기업의 제품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대부분의 IT 분야와 달리, RPA 시장은 국내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며 이끌어나가는 중이다. 다만 국내외 대기업들의 출혈 경쟁과 후발주자들의 난립으로 인해 시장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성능보다는 컨설팅·서비스가 중요…국산 제품 점유율 높아
국내 IT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CPU나 메인보드와 같이 가장 작은 HW 인프라에서부터 오피스나 메신저와 같이 IT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SW에 이르기까지, 몇 십 년 전부터 국내 IT 시장에서는 외산 제품들이 대개 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능을 제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외산은 제품 성능과 안정성, 국산은 접근성 높은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이 특징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기업용 IT 시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특히 클라우드가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기업의 독주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IT 제품에는 실물이 없고, 따라서 글로벌 벤더는 클라우드를 통해 국경에 제한 없이 자사의 제품을 서비스할 수 있다. 새로운 SW가 필요할 때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패키지 박스를 구입하는 경우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도입 이후 기술지원 역시 온라인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외산 제품을 선택하는 고객사의 걱정도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정면으로 경쟁하며 더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제품들이 있다. 외산 제품이 도입되기 전에 발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거나, 낮은 가격이나 기술지원 서비스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야들이 특히 그렇다. 국내 IT 업계에서도 국산 제품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 국내 A사의 RPA 솔루션 누적 판매량 (2017.1~2019.6)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분야가 대표적이다. 현재 국내 RPA 시장에서는 자체적인 RPA 솔루션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을 누르고 시장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토메이션애니웨어, 유아이패스와 같이 전 세계 RPA 시장을 석권한 기업들이 국내 지사를 설립하면서까지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RPA 기업들의 이와 같은 선전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 국내 RPA 기업 관계자는 “RPA 분야에서는 외산과 국산 제품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 특히 자체 제품의 성능보다는 고객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컨설팅이 중요한 만큼 국내 시장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국내 기업에게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관계자는 “가령 우리나라는 플래시나 액티브-X와 같은 비표준 기술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아직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비표준 기술을 사용한 IT 시스템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스템 분석과 구축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적은 투자로 큰 성과 기대…가장 주목받는 IT 기술로 부각
RPA는 사람이 해야 할 업무를 로봇이 자동으로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구현한 SW다. 문서를 참조해 엑셀 시트에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특정 시점에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을 작성해 보내거나, 보고용 양식에 맞춰 필요한 값들을 채워넣는 등, 대부분 복잡도가 높지 않고 단순반복적인 업무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업무를 IT 기술로 자동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일련의 명렁어 뭉치인 매크로(macro)와 비슷하다.

과거 제조업에서 사람의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체해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것처럼, RPA 역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로봇이 대신하도록 함으로써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단순한 업무라고 해도 사람은 키보드를 잘못 입력해 엉뚱한 값을 입력하는 등 실수(human error)가 발생할 수 있지만, 로봇은 이런 실수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정성도 높다. 먹거나 잘 필요도 없으니 24시간 내내 운용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비해 위험부담이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많은 기업들은 IT 기술을 통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함으로써 생산성을 늘리고자 하지만, 업무 시스템에 큰 변화를 주게 되면 기존 사용자들의 불만도 쌓이게 된다. 기간계 시스템을 수정했을 경우 안정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감수하고 개선한 시스템이 실제로 사용자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RPA는 기간계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도 사용자의 업무 프로세스를 변화시킴으로써 생산성을 높인다. 가령 엑셀 시트에 오프라인 매장의 시간대별 매출을 기록하는 업무가 있다면, 직접 엑셀 파일을 열어 입력하는 대신 로봇이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식으로 바뀔 뿐이다. 이 경우 사용하던 엑셀 프로그램이나 업무 내용,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결과물도 바뀌지 않지만 사용자의 업무량은 크게 감소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과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시간을 정량적으로 비교해 정확한 ROI를 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RPA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IT 기술 중 하나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해 발표한 AI 하이프사이클(Hype Cycle for Artificial Intelligence, 2018) 보고서에서 RPA를 기대의 정점(At the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단계에 위치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난해 전 세계 RPA 시장 규모를 분석한 보고서에서는 전년 대비 57% 증가한 6억 8천만 달러에 달하며, 이와 같은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2022년 약 24억 달러까지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트너는 특히 금융·보험·통신 분야에서 RPA 도입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둠에 따라 전 세계적인 관심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대기업의 85%가 어떤 형태로든 자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RPA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 국내 A사의 RPA 솔루션 누적 판매량 (2017.1~2019.6

ROI 의문…“적용 분야 선정에 심혈 기울여야”
하지만 RPA를 도입한 모든 기업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기관에서는 RPA 도입으로 얻은 업무 생산성에 비해 제품 라이선스 가격이나 컨설팅 비용이 비싸다고 지적했다. 사전에 RPA를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업무가 내부 시스템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RPA를 적용할 수 없게 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RPA 벤더들은 RPA를 적용해야하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쉽게 말해 단순반복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우선적으로 RPA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1년에 한 번 수행하는 연말 마감 업무를 위해 30명의 직원이 데이터 입력·수정 작업만 반복하고 있다면 이는 RPA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무의 복잡도가 높지 않고 반복작업이 많으면서, 사람의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반면 반복적으로 수행하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우며 사람의 공수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를 굳이 RPA로 대체할 필요는 없다.

국내 RPA 기업 A사 관계자는 “30명이 일 년 동안 해야 할 데이터 입력·수정 업무는 로봇 3대가 한 달이면 다 할 수 있다. ROI로 따지면 수백 %에 달하는 수치가 나올 것”이라며, “고객사 중 한 곳은 부서에서 2~3명이 도맡아 하던 업무를 RPA로 전환하고자 했는데, 로봇 한 대가 이 업무를 위해서만 24시간 가동돼야 한다면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편, 많은 경험과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갖춘 기업으로부터 정확한 컨설팅을 반을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 RPA를 도입한 후 다양한 업무에 시험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사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분석하던 중 RPA를 도입할 만한 업무가 발견됐을 때 비로소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RPA를 처음 도입하거나 명확한 도입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울 경우, 사내 IT 팀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경우 전체 예산과 구축 기간의 70% 이상은 컨설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A사 관계자는 또한 “대부분의 RPA 제품은 사용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국산 제품의 경우 국내 기업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맞춰져 있어 더욱 편리하다”면서도, “하지만 IT팀이 업무 자동화를 위한 기술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면 오류를 수정하는 데에만 수 개월이 소요될 것이고, 이미 만들어져있는 기능을 고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사 업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고가 아닌 최적의 제품 찾아야
송철오 그리드원 사업본부 차장

도입 성과가 뛰어나고 미래 전망이 밝다고 해서 모든 IT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RPA는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핵심 기술로 떠올랐지만, 모든 기업에게 혁신적인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성공적인 RPA 도입을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동시에 고객사 스스로도 RPA 도입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가령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RPA가 도입됐고 금방 유행을 탔다. 글로벌 기업들도 일본 시장 진출을 독려했고 도입하고자 하는 기업도 많았다. 일본 정부에서도 클라우드와 함께 미래를 위한 기술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탓이다.

▲ AI 기반의 OCR 기술이 적용된
그리드원의 ‘AI인스펙터원’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시장에서 RPA는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술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상태로 RPA가 가져다 줄 이득에만 집중한 채 무작정 도입하는 고객이 늘어나다보니 혁신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자 RPA의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말하자면 RPA의 한계를 너무 빨리 알게 됐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RPA 시장이 망한 것은 아니지만, 초창기 보여줬던 빠른 성장세나 기업들의 높은 관심도는 이전에 비해 한층 꺾인 추세다.

RPA는 다른 최신 IT기술들과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제품은 아니다. 오픈소스로 나와있는 RPA도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RPA 제품을 선정할 때 객관적인 성능 지표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해당 제품을 개발한 기업의 차별화 포인트를 파악하고 자사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업무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리드원은 오랫동안 축적해온 AI와 자동화 기술을 바탕으로 자사의 RPA 제품 ‘오토메이션원(AutomationOne)’과 ‘AI인스펙터원(AI InspectorOne)’에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기술을 적용했다. 해당 기술을 사용하면 손으로 작성하거나 기계로 인쇄한 문서를 카메라 등으로 스캔해 담겨있는 내용을 문자화한다. 현재 정확도는 약 95%에 달하며, 사람은 로봇이 인식하지 못한 나머지 5%의 서류만 직접 처리하면 된다.

이는 종이 문서 사용이 많고 이를 사람이 직접 PC에 입력하는 기업·기관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매일 수백 장의 민원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라면 우수한 OCR 기술이 결합된 RPA 제품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로 종이 문서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이메일 발송이나 데이터 관리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고자 한다면 OCR 기술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닐 것이다. 무작정 우수한 제품을 도입하겠다는 막연한 목표보다는 적용하려는 업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당 업무에 잘 맞는 RPA를 선정해야 한다.


고용 불안감 조성…업무 생산성 향상의 부작용
아울러 도입을 고려하는 기업은 RPA가 모든 조직 구성원들에게 환영받는 선택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자동화된 공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생산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것처럼, RPA로 인해 단순반복적인 업무가 로봇으로 대체되면 해당 업무를 수행하던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을 받게 된다. RPA를 도입해 10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 9명은 할 일을 잃는다. 일부 RPA 벤더나 업계 관계자들은 남은 9명이 새롭고 창조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기업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늘 그런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국내에서도 RPA로 인한 고용 불안에 대해 많은 기업·기관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RPA의 장점은 인정하지만 사내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특히 시장 초기부터 높은 관심을 보였던 공공기관에서는 RPA가 기존 직원을 대체할 경우 외부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도입을 미루거나 도입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 한 기업은 매 분기 말마다 대량의 데이터 입력 및 정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모 기업의 RPA 제품을 도입한 이후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심지어 해당 업무가 종료된 후 데이터 검수 및 수정 작업이 간편해져 사내 직원이 느끼는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다.

임형태 이든티앤에스 전무는 “아직 문화적인 거부감으로 인해 RPA 도입을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업무 혁신 과정에서는 늘 갈등이 발생해왔지만 결국 효율적인 방향으로 결론지어졌다. AI로 인해 단순노동직이 다 없어지면 결국 모두가 창조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조금 더 시간은 걸리겠지만 최종적으로는 RPA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흐름이 될 것”이라며, “기업에서 단순반복적이고 ROI가 높은 업무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이를 RPA로 대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많다. 도입도 빠른 기간 내에 이뤄지고 결과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과를 확인하기도 쉽다. RPA 도입이 인원 감축으로 이어진다는 불안보다는, 번거로운 업무를 대신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더욱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 RPA 도입에 대한 종류별 기대 및 만족도 (출처: 딜로이트

개발자 확보 난항…유지보수 어려워 사업 포기하기도
한편 국내 RPA 기업들은 인재 확보가 어려워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IT 업계의 인재난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RPA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RPA는 단순히 개발 도구를 잘 다루거나 코딩을 잘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고객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업무자동화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제대로된 성능을 발휘할 수 있기에 더욱 어렵다.

한 RPA 기업 관계자는 “당사의 RPA 제품은 컴퓨터공학과 졸업반 학생 정도면 일주일만에 능숙해질 수 있을 만큼 손쉽게 구성돼 있다. 하지만 업계 특성상 주니어 개발자보다는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노련한 개발자가 필요하다”며, “RPA 제품은 일반적인 솔루션과 달리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이다. 패키지 박스만 전달하고 끝이 아니라 SI사업처럼 고객사와의 협의를 통해 많은 공수가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따라서 각각의 프로젝트들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PM급 이상의 개발자들이 다수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품 도입 후 유지보수 및 후속개발을 위한 개발자 확보도 쉽지만은 않다. 실제로 국내 시장에서 국산·외산 RPA 기업들은 빠르게 늘어나는 고객사에 전부 대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선점 및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흐름을 타고 고객사를 늘리긴 했지만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개발자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RPA 기업에서는 내부 개발자를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다수의 파트너사를 확보해 간접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조차 한계에 이르러 고객의 도입 요청을 거절하기도 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국내외 RPA 기업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개발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각 대학들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학생 때부터 RPA 및 업무자동화와 관련된 기술을 교육하고, 채용 연계를 통해 우수한 인력들을 회사로 영입하고 있다. 사내 교육을 통해 본래 다른 업무를 담당하던 개발자들에게 RPA 관련 업무를 맡기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국내 한 IT 기업은 신규 채용을 통해 인원이 충원되기 전까지 자사가 보유한 개발자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RPA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과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또 다른 RPA 기업 관계자는 “개발자나 IT 관계자 입장에서는 RPA가 개인의 경력 관리에 매력적이지 않은 기술인 것 같다”며, “RPA는 분명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이지만, 이를 구성하고 있는 기술 수준이 특별하지도 않고 특정 업계를 노리는 개발자들에게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새롭게 이쪽 시장에 들어오려는 개발자들이 적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당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RPA에 특화된 인재가 필요하니 관련 교육을 마련하고 있지만, 개발자들 입장들이 자신의 경력 관리를 고려한다는 점을 생각해 영입 및 교육 분야를 넓혀가려고 하고 있다. 결국 RPA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AI와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장기적으로도 적합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신규 제품 난립으로 시장 혼란…벤더와 고객의 자정 노력 필요
끝으로 국내 RPA 벤더들은 향후 국내 RPA 시장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업계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RPA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RPA 기업인 B사 담당자는 “최근 RPA 기업들이 가격 후려치기를 포함한 공격적인 마케팅 프로모션을 통해 신규 고객 확보와 타사 제품 윈백을 노리고 있다. 출혈을 감수하고 치킨런에 가까운 프로모션을 이어가면서 인해 국내 기업들이 가격 등에서 많은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당 관계자는 “국내 RPA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 회사의 매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장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시장 혼란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은 비단 과도한 가격 경쟁을 일삼는 기업들만은 아니다. 최근 RPA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체 RPA 솔루션을 개발해 시장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SI 분야에서 업력을 쌓아온 기업들은 고객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신규 RPA 서비스를 제시하고 있으며, 오픈소스 RPA 등을 바탕으로 자체 솔루션을 개발해 내놓는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최근 국내 대기업 IT 계열사에서도 RPA 솔루션을 출시한 바 있다. 짧은 기간 안에 과도하게 많은 제품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RPA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고객사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트렌드에 편승하고자 급하게 개발한 제품이 기술력이나 도입 이후의 지원 서비스 등에서 충분한 만족도를 보장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RPA 시장이 한창 확대되고 있는 신흥 시장인 만큼 고객사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업력을 갖춘 기업과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RPA 기업의 기술력과 레퍼런스를 검증해야 할테지만, 사용해본 경험이 없는 제품을 어떻게 검증해야 할지 막막한데다 현재 국내에서 레퍼런스를 충분히 갖춘 RPA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에 대해 B사 관계자는 과거의 ERP 시장과 지금의 RPA 시장이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B사 관계자는 “한때 ERP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수많은 ERP 기업들이 새롭게 생겨나던 시기가 있었다. 실제로 당시 ERP 시장에는 많은 잠재 고객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좋은 기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한적인 국내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업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이 됐고, 경쟁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수없이 문을 닫거나 합병되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결국 ERP 공급기업들이 사라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기업의 ERP 제품을 도입한 고객사들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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